▶ 본문
“위로는 일시적인, 혹은 일회적인 마사지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마사지를 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어깨의 근육이 다
시 뭉치잖아요? 마음도 다시 뭉치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위로는 ‘따뜻한 속임수’일 수도 있는 거죠. 유교는 ‘무엇을
하라’고 얘기하지, ‘너 힘들지’ 하고 위로하진 않습니다. 『중용』이나 『대학』에 이런 말들이 나와요.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과녁을 탓할 게 아니라 자기를 탓해야 한다.’ 바깥에 대고 징징대지 말라는 얘기죠. 문제의 근원이 자기였
으니 이 때 ‘무엇을 하라’라는 말은 자기를 혁신하라는 말과 동의어가 됩니다. 어차피 시련이나 상처는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들이죠. 원망만 하고 있으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 돼요.”(29쪽)
“문제의 중심에 자기가 있다는 거죠. 그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어떤 일이 외적 환경 요인에 의해 구성되는 몫은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3분의 2는 ‘나’에게 달렸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 역사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유배 가는
선비가 많았죠? 이 때 유배를 가는 상황이 3분의 1이라면 그 선비가 어떻게 상황에 대응할 것인가가 3분의 2예요.
여기서 필요한 게 자기혁신입니다.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다듬는 것이죠. 이순
신 장군님 같은 분이 그랬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유교적 정신으로 무장돼 있었어요. 선조에게 받은 고문조차도 고려
의 대상이 아니었죠. 왕과 조정을 원망하기보다는 그 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오직 국가와
백성을 향한 책임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었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운명과 마주하는 나의 ‘맷집’이 길러지는
겁니다. 맷집을 기르는 게 유교에서는 힐링이고요.”(32쪽)
“다들 행복의 정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저 멀리 ‘행복’이란 깃발을 설정해 놓고 달려왔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깃발은 언제나 손닿지 않는 저 멀리에만 있다는 거죠. 깃발만 좇다 보면 눈앞의 현실을 놓치게 되고요. 그래요. 저는
오히려 행복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굳이 그것을 이야기하자면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아주 많은 이름을 꺼내야
해요. 성취랄까, 만족이랄까, 아니면 달콤함? 그런데 때로는 슬픔도 불편함도 행복이 될 수 있어요. 행복을 멀리, 따
로 설정해 두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이 때 눈앞의 현실은 평가절하 되고 무시돼요. 현실
이란 항상 ‘부족한 상태’ 아니겠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상태들이 모인 게 우리의 삶이 아니면 뭐가 삶일까요.”(74쪽)
“순환은 원점으로의 회귀가 아니에요. 이중 나선의 형상을 떠올려 보세요. 융 심리학은 그런 나선형으로 전개됩니
다. 여기서는 상승이 아닌 하강을 중요시하죠. ‘성장’보다는 ‘깊이’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땅 위의 나무는 아름다
워요. 잎도 있고, 꽃도 피고, 새가 둥지도 틀고요. 하지만 땅 속은 캄캄합니다. 벌레도 많고, 바위투성이에 공기도 희
박하죠. 그래도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야 해요. 뿌리가 내려간 만큼 몸통도 자라는 거니까. 그래야 나무는 건강해집
니다.”(116쪽)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성이 살겠습니까. 개성이 살아나고, 개성이 만들어질
시간 자체가 없는데.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갔더니 격리된 섬마다 같은 종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고 하죠. 격리가 돼야 좀 다른 방향으로도 진화할 수 있어요. 그중 잘된 것이 자연 선택을 받고 또 진화하는 거죠. 공
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그게 좋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일상의 유배, 자발적 유배예요.”(137쪽 )
낯설게 하기 또한 인간의 완전치 못한 한계와 관계된다. 제 눈에 좋고 편안해 보이는 것만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眞善美]’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든가, 자기 연민의 슬픔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예술은
이처럼 고착화한 시선에 ‘낯선’ 충격을 던진다. 그러나 이 낯설게 하기는 때때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사람들
은 흔히 무언가를 낯설게 느끼면 거부 반응부터 보여요. 낯선 것을 ‘낯설다’가 아닌 ‘싫다’나 ‘틀렸다’로 표현하죠.” 그
런데 궁금해진다. 잔잔했던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이 낯섦이 대체 치유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150쪽)
“인문학이라는 건 인간과 학문의 존재론적인 가치와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라야 해요. 저마다 돈 벌려고 난리 칠 때
‘과연 그게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가치관이 인문 정신에서
나오는 건데, 한국 사회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 해방 이후를 거치는 과정에서 바람직한 인문적 시스템을 수립하
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훌륭한 선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겁니다. 고통 속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는 무엇이었
고, 어떤 세상을 원했는지를.”(179~180쪽)
▶ 추천사
행복이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이처럼 근원적이며 중요한 물음에 다양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놀랍게도 그 답들의 잎과 줄기와 뿌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 이나미 융심리학자
행복은 진화적으로는 수수께끼지만 우리네 실제 삶에서는 가장 뚜렷한 목표다. 그러나 행복은 마치 신기루마냥 잡
힐 듯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결국 삶의 현장에서도 행복은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다. 정답을 내리지 않는 인문학이
과연 답을 갖고 있을까? 하지만 서로 묻고 답하는 동안 나만의 행복을 찾거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최재천 생물학자
행복을 화두로 우리 시대 지성들과의 대화로 풀어낸 언어의 향연이 풍성하고 웅숭깊다. 그 향연에는 우주와 자연과
문명과 인간에 대한 지적 통찰의 희열만 아니라 이 난세를 밝혀 줄 지혜의 보석들도 무량무량 반짝인다. ─ 고진하 시인
전작 『현문우답』에서 보여 주었던 소박한 것 같으면서도 깊고 예리한 지혜와 통찰력을 이번에는 여러 분야 학자들
과의 거침없는 대화를 통해 보여 준다. 학자들이 생각만 하면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인생관을 끌어내 주는 이 일련
의 작품들은, 진정한 인터뷰란 창조적인 상호작용임을 깨닫게 한다. ─ 장하석 과학철학자
스타일이나 관점은 일부 다를 수 있지만 저자는 상대방의 고민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인터뷰와는
달리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내게 된다. 그는 그런 내면세계를 세상과 나누는 데 탁월하다. 그렇게 서로의 본질을 훼
손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조금 더 화(和)하게 만드는 재주를 그는 갖고 있다. ─ 이덕일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