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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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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카피: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부제: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원제 SOCRATES, JÉSUS, BOUDDHA

워서 부제: Trois maitres de vie

프레데릭 르누아르

출판사: 판미동

발행일: 2014년 7월 15일

ISBN: 978-89-601-7926-4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0 · 392쪽

가격: 18,000원

분야 비교종교, 삶의 지혜, 종교


책소개

“함정으로 변한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왜 사는가?’란 질문에
삶의 스승 3인이 내놓는 가장 실존적인 대답

“여름휴가 동안 프랑스인들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책”
— 《르 피가로》

물신주의 시대, ‘인간’이 나아가야 할
단호한 길을 제시하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던 인류의 스승 3인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 우리가 처한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비화를 재조명하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정의, 사랑, 자비 등의 메시지가 현재의 우리 삶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 주는 수작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이자 철학자, 종교사학자, 잡지 편집장,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박학한 지식과 영적 지혜를 한데 아우르며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여름휴가 동안에 대형 서점보다 바닷가 소매점에서 더욱 많이 팔린 책으로 보도되어, 바야흐로 여름이 사색하는 계절로 바뀌고 있음을 알린 신호탄이 된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단순히 경제적이며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철학적이며 영적인 위기로 규정한다. ‘혼란스러운 위기의 시기에 인간이 나가야 할 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저자는 세 성현의 삶을 서로 교차하여 조망한다. 유년기부터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 각각의 개성,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후대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역사가의 관점에서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불멸,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키워드들이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설명하면서도, 그 차이점을 짚으며 어설픈 통합을 지양한다. 세 스승의 ‘윤리적 가르침’ 중 어느 것을 따르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독자들이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리고 붓다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내가 볼 때, 그들의 삶과 가르침은 보편적인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개별적 존재와 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면서도 개별적 존재들이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몸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자기 인식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지혜롭게 어우러져 있다. 비록 그 메시지들이 다양한 종교적 기반에 뿌리내리고 있긴 하지만 포용력 없이 교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상식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으며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호소를 한다. (p.14)


목차

▶ 차례

들어가는 이야기 | 존재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8

1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1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21
2 사회적 배경과 유년기 51
3 성 문제와 가족 71
4 소명의 발견 85
5 인격과 개성 101
6 안주하지 않는 삶 121
7 가르침의 기술 143
8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177
9 세 스승이 자신에게 내린 평가 211
10 후대의 평가 227

2부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

11 그대는 영원불멸한 존재다 251
12 진리를 찾아서 277
13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로워지는 존재다 303
14 올곧은 사람이 돼라 319
15 사랑할 줄 아는 사람 337

참고문헌 373
주 376
찾아보기 380


편집자 리뷰

“내면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는 사회, 정치, 종교 영역의 기성 질서를 위협하는 선구자이자 개혁가였다. 기원전 47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산파와 조각가 사이에서 태어난 소크라테스는 델피신탁을 받아 아테네의 많은 청년과 함께 진리의 길을 모색하다가 사회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당했다. 기원전 560년경 인도 왕족 자제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어느 날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내면의 각성을 얻고 출가하여 35세 때 득도한 뒤 45년간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불법을 설파하다가 식중독으로 사망했다.(혹은 독살되었다.) 기원전 4년경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는 서른 살에 세례를 받고 40일간 광야에서 고행하며 신의 부르심을 받아 12사도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다가 30년경 십자가형을 당했다.

그들은 모두 안락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칙과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았고, 그 살아온 방식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여기서 그들의 가르침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불멸의 개념이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아우르는 거대한 시각으로 내면의 삶을 계발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지혜와 정의, 사랑을 중시하는 태도가 비롯된다. 참과 거짓,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진리 탐구가 그 삶의 중심을 이루며, 진리를 찾다 보면 자연스레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된다. 전통과 권위 그리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짓눌렸던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내면적 자유를 얻는다. 이런 자유는 바로 진리를 통해 자신을 알고 더 깊은 차원에서의 노예 상태(소크라테스-무지, 예수-원죄, 붓다-갈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됨으로써 얻어진다.

더 나아가 저자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는 “내면의 자유를 얻는 것보다는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옳고 그름의 문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문제 등 가르침의 정수들이 나온다. 소크라테스의 정의, 예수의 사랑, 붓다의 자비라는 개념도 이 실천의 문제에서 나온 덕목이다. 예수의 사랑은 나눔과 친절이 전제되는 신적인 특성을 가진 아가페적 사랑이라는 점에서 욕망의 에로스와 구분되고, 붓다의 자비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전체 생명계를 깊이 경외한다는 점에서 예수의 자비와 구분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세 스승이 가진 지혜의 눈으로 보면 참된 것과 바른 것은 같은 것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한다면, 그 앎으로 인해 우리가 바르게 행동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앎이 의미를 지닌다. 그런 연유로 붓다나 소크라테스나 예수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윤리에 대한 가르침이다. 성공한 삶이란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삶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입증한 바가 중요하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도 여전히 그들에게 믿음이 간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행적으로 그 가르침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p.371)

“삶의 성찰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다.”
여름휴가에 만나는 삶의 스승들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3인의 스승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이 실천한 덕목들을 전하며 삶의 의미를 묻는 이 책은 역사를 대한 엄정한 자세와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쓰였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 인문교양서의 전범(典範)이다. 특히 한 종파나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려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영적 휴머니즘(spiritual humanism)’이라는 개념을 싹 틔웠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발간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여름휴가를 앞둔 6월에 출간된 이 책은 휴가가 단지 휴식을 취하는 시기에서 사색하는 시기로 변해 가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등장했다. 각종 볼거리와 TV 프로그램 홍수 속에서도 한 달 동안 대형 쇼핑몰과 서점 등을 통해 2만 권이 팔려 나갔으며, 바닷가 신문판매대와 같은 소매점에서 더욱 잘 나가 여름휴가 기간에만 모두 5만 5천 권 가까이 팔려 나갔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으며, 아무리 흥미로운 멀티미디어가 넘쳐나도 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여전히 책에서 그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세상의 가치와 정신적 축을 만든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이 그들의 삶을 통하여 전하는 메시지는 단호하고 간결하다. 인간의 삶은 고귀하며, 저마다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의 삶에 심오한 통찰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함께 평화를 누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결국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적이며 영적인 메시지는 ‘왜 사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에두르지 않는 대답이기도 하다. 삶의 스승 3인이 전하는 가장 뜨겁고 실존적인 메시지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많은 현대인들의 삶을 재정비하는 데 단단한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 우리가 미처 몰랐던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일화

1. 그들은 왜 직접 글을 쓰지 않았을까?
세 스승이 문맹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서는 젊은이들이 문자를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고, 주로 교역과 통치에 한정하여 사용되었다. 따라서 문자가 아니라 말로 가르침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선 별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은 삶의 지혜였다. 삶의 지혜를 전하는 방식은 산교육의 방식이었다. 올곧은 행위 그리고 현장 속에 살아 있는 언어와 어조로 직접 보여 주는 방식이었지, 문자로 써서 전달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p.15~16)

2. 그들의 실존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자료는 왜 남아 있지 않을까?
그들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주나 통치자만이 초상을 주화에 새기고 석판에 기록을 남기거나 거대한 무덤을 남기는 식으로 후대에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당대의 역사는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권력자가 아니었으며,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았다. 또 그들은 세상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세속에서의 지위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거의 없고 정치적 영향력도 보잘것없었기에 제자들은 스승들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위대함에 감화를 받았어도 그들을 위한 기념물 하나 세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p.26)

3.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크리톤이여, 우리가 아스클레피오스께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게.”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닭 한 마리를 갚으라는 말은 역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역설이라 할 수 있을까? 아스클레피오스는 다름 아닌 의학의 신이다. 당시 전통에 따르면 치유를 기원할 때와 치유가 되어 감사를 표할 때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런데 목숨을 잃는 판국에 제물을 바친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이돈』에서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의 다른 모든 대화를 놓고 보았을 때, 이것 또한 소크라테스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역설일 것이라는 가정이 분명 설득력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록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중요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니체는 이 마지막 말에 사로잡혔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삶의 고단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삶은 하나의 질병이요, 죽음은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 즉 치유로 보았기에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죽음과 영혼 불멸에 관하여 소크라테스가 했던 말에 비추어 판단한다면 그 제물이 육신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가정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신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고 한 셈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죽음이란 “영혼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단순히 옮겨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배심원들을 향해 소크라테스는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하면서도 기쁨에 겨운 듯한 어조로 말한다. “지금 죽는 것이, 그러니까 인생의 근심 걱정으로부터 벗어는 것이 제겐 더할 나위 없는 일인 듯합니다.”(p.200~202)

4. 간음한 여인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 예수의 일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일화는 정의보다 사랑이 먼저라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 앞뜰에 도착한 예수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때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율법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권력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 앞에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데려와 세워 놓고선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이런 죄를 범한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예수가 그 여자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독실한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썼다. 무엇을 썼는지는 전해진 바 없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무 글자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가 몸을 굽힌 것으로 보건대 예수는 상대와 적의의 시선을 주고받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몸을 곧추세우고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러고 나서 예수는 시선을 피해 다시 몸을 굽히고 땅에 무언가를 써 나갔다. 간음한 여인을 고발한 이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 복음에선 “나이 많은 순으로” 떠났다고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그들을 조롱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곤 말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여자와 단둘이 남게 되자, 비로소 예수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고발자들을 경멸하듯 보면서 그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들이 스스로 양심을 돌아볼 수 있게 더는 나서지 않고 한발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p.339~340)

5. 붓다는 정말 독살되었을까?
기존 전통 세력에 의해 독살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붓다는 식중독으로 여든 살에 세상을 떠났다. 파바라는 마을에서 보석상을 하는 ‘춘다’가 망고나무숲으로 붓다 일행을 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오늘날 그 조리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춘다는 ‘수카라맛다바’(부드러운 돼지고기)라는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게 했다. 붓다는 그 요리를 먹으면서도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지 못하게 했다. 붓다는 요리를 다 먹지 않았고 범천도 먹을 수 없을 테니 남은 것을 땅에 묻으라고 했다. 밤중에 붓다는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고 피를 토했다. 그럼에도 다시 길을 떠났고 룸비니 남쪽에 위치한 쿠시나가르 근방에 이르렀을 무렵 더는 길을 가지 못하고 머리를 북쪽으로 하고 몸을 뉘었다.
고의로 붓다에게 독이 든 음식을 준 것일까? 그 무렵 승가는 엄격한 고행을 강조하는 부류와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로 나뉘어 갈등을 빚고 있었다. 붓다는 중도를 지키자는 부류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팔리어 경전을 보면 독살설을 언급하면서 이내 그 가설을 부정한다. 다만,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건이라고만 한다. 왜냐하면 붓다는 그 보석 상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고 몇몇 비구들을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그가 제공한 최후의 공양 덕분에 붓다가 반열반에 들어 “천상 세계에 지고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무 아래, 오른쪽으로 돌아누운 붓다는 마치 사자가 엎드린 형상이었다. 그런 자세로 붓다는 가까운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울음을 곧잘 보이는 아난다를 붓다는 나무마려 처음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아난다여, 그대는 참 오랫동안 말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서도 사랑과 다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아낌없이 이 여래를 옆에서 도왔다.” 불교 설화에 의하면, 동트기 전 붓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 천지가 흔들리고 포효했다고 한다. (p.180~182)

추천의 말

● 매력적이고 교훈적이다. — 《르 피가로》

● 르누아르가 지속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그가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에게 깊이 영향받은 영적인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는 철학적이고도 영적인 세 인물에 대해서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그의 목표는, 유명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각 인물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그들이 어떻게 오늘날과 관련되는지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 《사이콜로지(Psychologies)》

● 우리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삶, 개성, 생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떤 이유로 그들을 함께 묶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여전히 오늘날 우리에게도 관련이 있는가? 이 책에서는 저자는 보편적이고도 핵심적인 세 인물의 초상을 그려 낸다. —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

● 정말 좋은 읽을거리! — 《프랑스 앵테르(France Inter)》

● 성공적이고 풍부한 내용과 의미를 담은 책. 사색을 위한 양식을 제공한다. — 《르 파리지앵(Le Parisien)》

● 휴가 기간에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꼭 봐야 할 책. — 《펠레헨(Pélerin)》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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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르누아르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자 세계적인 종교사학자, 철학자.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도미니크회 수사인 마리 도미니크 필립과 세계적인 철학자인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정신적인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인도와 이스라엘에 체류하고 프랑스의 수행 암자와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파야르 출판사에서 총서 책임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직접 저자로 나서 피에르 신부, 움베르토 에코 등과 나눈 철학과 영성에 관한 다수의 대담집과 심층 연구서를 펴냈고, 생태 문제에 관심을 두고 ‘국경 없는 환경’이라는 단체를 창립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1994년에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학문적 스승인 에드가 모랭의 뒤를 이어 철학, 사회학, 역사학을 한데 엮은 학제간 연구에서 종교 문제를 다뤘다. 공영방송 프랑스5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이비 종파, 그 거짓말과 이상」을 공동 연출하고 여러 편의 TV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집필했으며, 공동 집필한 희곡 「신의 선의」는 2009년에 초연한 뒤 5개국에서 각색되어 상연되고 있다.

현재 저자는 철학자이자 소설가, 라디오 진행자, 프랑스 최고의 종교 간행물 《종교의 세계》 편집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두 편의 역사소설 『천사의 약속』과 『루나의 신탁』은 20개국에서 1백만 부가 판매되는 등 ‘프레데릭 르누아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저서로는 『오직 사랑』, 『네오르네상스가 온다』, 『불교와 서양의 만남』, 『이중설계』, 『신이 된 예수』, 『그리스도 철학자』,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 등이 있다.